미스터가가멜
2012. 1. 10.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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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촌철살인(寸鐵殺人)의 미학,사자성어(四字成語)
주자(朱子)의 제자 나대경(羅大經)이 쓴 학림옥로(鶴林玉露)에 촌철살인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한 치 밖에 안 되는 쇠붙이로 사람을 죽인다는 뜻으로,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한 마디 말이 수 천 마디의 말을 능가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해를 맞이할 때면 정부기관이나 기업,특정인들이 4자로 된 사자성어를 통하여 그들의 새해 희망이나 각오, 또는 세태를 풍자하기도 하는데,이 짧은 글자에 포함된 절묘하고 깊은 뜻이나 해학은 가히 촌철살인의 미학이라고 하여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각 계에서 발표되는 사자성어 중, 전국 대학 교수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여 교수신문이 선정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한 해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얘기하고 있다. 금년에도 교수신문은 전국 대학교수 28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의 32.4%가 2012년의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파사현정'은 그릇된 것을 깨뜨려 없애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으로 중국 송나라 대혜선사의 일화에서 나온 얘기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통해 불의와 부정을 몰아내고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정치가 바로 서기를 기대하는 희망이 담겼다고 교수신문은 밝혔다. 세종이 추구했던 좋은 나라의 조건인 ‘생생지락(生生之樂)’이 27%의 지지를 얻어 2위에 올랐는데 이는 서경(書經)에 나오는 말로 ‘생명을 살리는 즐거움’이라는 뜻이다. 공자의 유명한 정치사상인 ‘어질고 유능한 인물을 선택해 서로 전하였다’는 뜻의 '선현여능(選賢與能, 20.6%)'과 중용(中庸)에서 출전된 '훌륭한 지도자가 있으면 훌륭한 정치가 이뤄진다'는 뜻의 '인존정거(人存政擧, 10.3%)' 등이 뒤를 이은 것을 보면 바야흐로 금년이 선거의 해임에는 틀림없는 모양이다.
2011년 말 매일경제가 국내 4대그룹의 기업환경과 새해 경영 화두를 참고하여 선정한 사자성어도, 복잡한 배경과 수 많은 기업 전략을 오직 4자에 담아낸 촌철살인의 본보기라고 할 만하다. 삼성의 2012년 경영 화두를 ‘편안한 가운데서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는다’라는 ‘안불망위(安不忘危)’로 표현했는데 이는 이건희 회장의 좀처럼 안주하지 않는 성격을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하편에 나오는 말로 표현해 냈다.
격변하는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내실을 다져 변함없는 성장세를 이루겠다는 현대자동차는 ‘세한송백(歲寒松柏)’으로 묘사했다. 논어 제9장의 자한(子罕)편에 나오는 ‘추운 계절에도 소나무와 잣나무는 푸른 잎을 잃지 않는다’라는 의미이다. LG에 대한 사자성어도 의미심장하다. 스마트 폰 등 과거의 실패를 털어버리고 2012년을 도약의 해로 삼겠다는 LG그룹에 대해서는 ‘동산재기(東山再起)’로 표현했는데, 젊은 날 초야인 동산에 은거하다가 나이 40세가 넘어 재상으로 등극한 중국 동진(東晉)시대 사안(謝安)의 고사에서 유래했다. 최근 하이닉스를 인수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으려는 SK에 대해서는 ‘거친 돌 밭을 가는 소처럼 강인하고 우직’함을 나타내는 ‘석전경우(石田耕牛)’라고 했다. 조선건국 공신인 정도전이 팔도인물 품성을 평가하면서 태조 이성계의 고향인 함경도 사람을 표현한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기업에 있으면 금융권에 없을 리 없다. 국내 시중 은행장들이 새해 신년사에서 2012년 한해의 전반적인 경영전략과 직원들에 대한 당부를 사자성어를 통해 표현했다. 민병덕 국민은행장은 ‘한 개의 화살은 부러지기 쉽지만 여러 개가 모이면 꺾기 힘들다’는 뜻의 `절전지훈(折箭之訓)`을 제시했는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팀워크의 중요성을 4자에 담아냈다. 서진원 신한은행장은 중국의 사상가인 차이위안페이(蔡元培·채원배)가 1910년 대 ‘중국이론학사(中國理論學史)’에서 강조한 `여시구진(與時俱進)`을 새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했는데 이는 ‘새로운 시대정신에 시선을 맞추고 다 함께 미래를 향해 전진해 나가자’라는 뜻이다. 이순우 우리은행장과 조준희 기업은행장은 약속이나 한 듯이 기본과 내실에 충실하라는 뜻의 사자성어를 제시했는데 이순우 행장은 중용(中庸) 제15장에 나오는 말로서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등고자비(登高自卑)`를, 조준희 행장은 다산 정약용의 가르침으로 ‘터를 다져 주추를 굳게 한다’는 ‘축기견초(築基堅礎)`를 내세웠다.
이 명박 대통령도 신년 화두로 ‘어려운 시기에 큰 일에 임하여 엄중하고 치밀하게 일을 성사시킨다’는 뜻의 ‘임사이구(臨事而懼)’를 제시했다. 어려운 시기에 임기 말을 맞는 대통령으로서의 각오를 표출한 것인데 이는 공자가 제자인 자로(子路)에게 한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직장인들이 선정한 2012년 새해의 사자성어로는 ‘모든 일이 뜻대로 되길 바란다’는 ‘마고소양(麻姑搔痒)’이 선정되었는데 이는 중국 후한의 蔡經(채경)이 선녀인 마고의 긴 손톱을 보고, 가려운 곳이 있으면 어디고 다 긁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는 옛일에서 나온 얘기이다.
사자성어는 우리 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어서 최근 일본의 노다 총리가 ‘주역(周易)”에 나오는 ‘군자표변(君子豹變)’,즉 ‘표범 털가죽이 가을이 되어 아름답게 변해가는 것처럼 군자는 자신의 잘못을 고치는데 확연하고도 신속해야 한다’는 사자성어를 내 세워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것을 보면, 사자성어는 자귀 하나에 많은 뜻을 품은 한자의 묘미와 함께 사서삼경(四書三經)에 근거한 어쩔 수 없는 한,중,일 문화의 동일한 뿌리를 실감케 한다.
바야흐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각자가 나름대로의 결심을 하는 시기이다. 이런 때 좋은 가르침 하나쯤 가슴에 묻어두고 늘 나를 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수불석권(手不釋券)’ 같은 것, ‘손에서 책을 놓지않고 학문에 정진’한 중국 오(吳)나라 장수 여몽(呂蒙)의 이야기이다.^^
함기수 자문위원 / 세계화전략연구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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