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가 시집 가는 날,
정인이를 위한 작은 시집을 만들어 신혼 부부에게 주었숩니다.
정인이 엄마를 만나 사랑을 하고,
그 사랑에 아파하고,
사랑이 익어 결혼을 하고,
정인를 낳고,
정인이를 글로 쓴 것입니다.
우리 모두를 사랑합니다.
- 가가멜
정인(貞仁)이를 위한 작은 시집(詩集)
- 정인이의 결혼을 맞아 행복을 빌며 -
2007. 9.8(토) 12:00
아빠 : 허 대 영
엄마 : 이 영 자
초 옥(草屋)
허 대 영
언젠가
작은 집을 짓겠습니다.
북으로
커다란 창을 내겠습니다.
아우성 소리가 시끄러우면
두꺼운 유리를 달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초옥에 살겠습니다.
※ 이 시는 정인이 엄마를 만나 사랑이 더욱 큰 불꽃으로 타오르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그녀와 초옥을 짓고 살기로 작정을 한 후 쓴 시입니다. 아마도 1972년 쯤 으로 생각합니다.
※ 정인이 엄마는 1971년 나의 모교 속초초등학교에서 1971년 8월 면내교사교육연구대회에서 만났습니다. 이전에도 여러 번 만나 적은 있으나 그것은 동창이나 다른 의미였으나 이날은 아주 특별한 만남이었습니다. 앞 교실에서 뒤의 별동교실로 꽃무늬 원피스 입고 걸어가는 이영자 선생님은 천사이며 꽃송이였습니다. 사나이 가슴에 불을 지핀 것이지요. 총각 허대영 선생의 사랑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초옥은 풀로 지은 작은 집이지요. 그러나 사랑은 끝이 없는 그런…….
사랑 3
許 大 寧
만나고 돌아서면
또 만나보고 싶고
말없이 마주 보고
앉아만 있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그대 모습 그 얼굴 .
온종일 전화 앞에
기다림도 즐겁고
온 종일 기다려도
지루하지 않은 하루.
잊으려
눈을 감아도
다가오는 목소리.
※ 그 때는 전화가 없어서 만나지 못하면 전화를 걸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러다가 1973년쯤 우리 집에 전화가 놓였습니다. 6025번이었습니다. 전화기 옆에 있는 손잡이를 돌려서 거는 전화였는데 정인이 엄마의 전화를 기다리는 것은 지루하기는 하나 설레는 기다림이었습니다.
사 랑 1
許 大 寧
어느 때 어디에서
어떻게 오갔는가.
가슴에 남았음에
분명 왔다 간 것인데
오가는
흔적은 없고
큰 떨림만 남았다.
※ 사랑하는 이를 만나고 나면 곧 다시 보고 싶어집니다. 가슴에 떨림이 남아 있는데 사람은 없습니다. 그럴 때는 다시 달려가고 싶습니다. 금방 헤어졌지만 또 만나고 보고 싶은 것이지요.
사랑 2
許 大 寧
멀리 있어도
느껴지는 촉감이여
생각하면 할수록
꽉 차는 가슴이여
잊으려
눈을 감으면
더 또렷한 모습이어.
※ 멀리 있어도 정인이 엄마가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가냘프지만 이지적인 그 해사한 웃음이 그리운 시절은 1974년 쯤 되었습니다. 이글은 시로 쓴 것을 후에 시조로 개작한 것입니다.
사랑 5
許 大 寧
장거리 구멍가게
문 닫는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 든다.
기어오는 시외버스.
한나절
버스 정류장
그대 모습 찾는다.
※ 이 시(詩)도 위와 비슷한 시기에 쓴 것입니다. 막차를 타고 우리 고향(내가 근무하던 곳)을 지나가던 정인이 엄마의 모습이 보고 싶어 할일도 없이 장거리에 나와 가게 툇마루에 앉아 있다가 지나가는 막차를 보고 정인이 엄마를 보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춘원 가도(春原街道)
허 대 영
토요일 오후는 긴 수면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철근 콘크리트 숲에서
이십 분의 촉각이 흔들리는 순간
뼈마디 깊숙이 저며 오는 아픔.
출발은 외출하는 여인의 허벅지처럼
매끄럽게 시작되었고
차창에 흩날리는 바람 소리는
차차 아득한 날의 종소리.
춘천이 호수인 것을 누군들 모를까
원창고개의 신작로 사이에서
관절 마디가 산화되어 가고
구릉 깊숙이 파 내려가는 아득함.
자라 온 키만큼이나 늙어 버린
노송의 빈 가지에 삭풍이 쉬어 가는 데
목구멍은 만나는 즐거움을 되풀이하기 위한
소용돌이를 시작하고 있다.
심해는 출렁이지 않는다.
고산의 눈은 만년설이다.
비탈길은 아무에게나 비탈길이고
토요일은 버스 바퀴에서 미끄러지고 있다.
※ 그러다가 아내는 홍천 읍으로 나는 원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정인이 엄마를 만나러 남자는 토요일 이면 그녀의 집이 있는 춘천으로 향하였습니다. 춘천에는 아리따운 여인이 있었지만 아직은 기다리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자의 짝 사랑이었지요. 1974년 가을이었습니다.
달려가리라
허 대 영
그 대 음성이 있으면
달려가리라.
풀숲의 이슬이 해안을 향해 달리는 날.
골짝을 따라 오르는 안개가
태양을 향해 솟는 날.
미풍은 흐르고
가지 사이 새에 나뭇잎 한두 개 남아
잔추(殘秋)를 끝내고 있는 날
여름의 기억을 되새김하는 갈매기 해안으로
가느다란 음성이 있으면
달려가리라.
구름에 날개를 의지하고
익지 않은 언어를
깎는 조각사여!
지난 모든 날의 검은 빛깔은 모두 날리고
하얀 음성
가슴이 보이는 대화가
가느다랗게 들리면
내
달려가리라.
※ 그래서 ‘달려가리라’를 쓰게 됩니다. 그녀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라’라는 시를 쓰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격주 정도로 춘천으로 달려가게 됩니다.
그리움
허 대 영
눈을 감아도 환하게
떠오르는 날들.
귀를 막아도 은은하게
들려오는 이야기들.
아!
살갗을 덮어도, 덮어도
느껴지는 촉감, 촉감들.
※ 때로는 만나지 못하는 아픔을 노래하게 됩니다. 멀리 있어도 모습도 보이고, 이야기도 들리고, 촉감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옆에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것입니다. 미쳤다고 할 수 있지요.
사랑한다 함은
허 대 영
사랑한다 함은
꿈속에서처럼
둥 둥 하늘을 떠다니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
늘 가슴과 가슴 사이에서
뜨거움으로 솟아 나와 마주치는
그런 것.
사랑한다 함은
소설에 피어나는 만남과 이별같이 화려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저 다투고 헤어지고 말 안하고
그러다간 다시 보고 싶은
그런 것.
사랑한다 함은
영화 속의 연인처럼 아름다운 낱말로 장식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보다
손목을 꼬옥 잡고
그저 곁에만 있고 싶은 것.
먼발치에서
눈을 마주치며
그저 바라만 보아도 좋은 것.
사랑한다 함은.
※ 그래서 사랑을 노래합니다. 사랑한다함은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좋은 것이 됩니다. 바라만 보아도 배가 부릅니다. 바라만 보아도 부자가 됩니다.
그 대
허 대 영
청솔 잎 우는
산정에서
그 대 작은 잔을 채우면
내 마시리라.
하늘 그득한
구름밭 갈며
가슴이 타는
술잔을 부으면
내
차서 넘치도록 받으리라.
그 대
부신 노을 한 자락 그림자에 숨은
지난날의 모든 것을
그득 채워
머리카락이 흠뻑 젖도록
콸콸 부으면
그 대 노래 가락
잔잔한 파도로 넘실대고
내 마시리라
취하도록.
※ 보고 싶어도 옆에 없을 때에는 상상의 나래를 넓게 폅니다. 마음의 날개는 북으로 향하고 사랑하는 이는 멀리 있어도 함께 차도 마시고 술도 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에게
허 대 영
창문을 열어요.
공기가 맑아요.
바람이 부는군요.
꽃향기가 코끝에 흩날리고
아 !
거기 나비가 노네요.
이제 창문을 닫아요.
햇살이 따갑네요.
향긋한 내음에 취해
우리 모두
숨이 가빠지네요,
그러나 그러나
답답한 가슴이 문을 열고 나가네요.
뛰어 나가고 싶은 건
당신이 거기 있기 때문이에요
하늘은 파아랗고.
다시 창문을 여세요.
바람이 차네요.
옷깃을 여미고 마음 혼자 나들이 가네요.
북으로, 북으로
아! 거기 당신이 있어요.
그래요
당신이 환하게 웃고 있어요.
심장은 몹시 뛰고
원주 하숙방엔 찬바람이 부네요.
떠나고 없는 빈 방
이제 창문을 닫으세요.
※ 북쪽에 있는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북쪽으로 난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북창을 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마음의 창이 늘 열려 있어서 마음은 구름을 타고 북으로 달려가게 됩니다.
사랑을 위한 방정식Ⅰ
허 대 영
우리는 혹시, 때때로
샘이 되리라.
깊지도 얕지도 않은 샘이 되리라.
혹시 낙엽이,
때때로 꽃잎이,
때때로 물방울이 나의 얼굴을 덮을지라도
잊어버린 양
다시 되돌아 와 옛 그대로 흘러넘치는
샘이 되리라.
온통 두터운 바위에 쌓여 세상의 전부를
안으로만 간직하는
사라지지 않는 샘이 되리라
마르지 않는 당신의
샘이 되리라.
※ 사랑은 샘으로 변하여 늘 그런 깊이와 양으로 흐르게 됩니다. 지나치게 넘치지도 않고 너무 얕지도 않은 적당한 사랑의 샘이 흐르게 됩니다. 사랑이 무르익었다는 이야기이지요.
사랑을 위한 방정식 II
허 대 영
노래하리라
비바람이 불어 와
폭풍이 불어 와
긴 날 동안 쌓아 놓은 탑이 흔들린다 해도
탑신을 타고 오르며
계단마다에 무지개를 그리며
노래하리라.
때로는 검정 벽돌이 날아가고
지진이 전신을 애무해도
한겨울의 한파가 스쳐 가도
뙤약볕에 온 몸이 휩싸여도
아! 그래도
노래를 부르리라.
겨우내 감싸주던 솜털을 뚫고
파아란 싹을 틔우는 하늘 열리는 날을 위해
힘찬 행진곡을 부르리라
노래하리라.
※ 사랑을 위한 방정식 역시 당신을 기다리는 마음을 홀로 밤새워 그리며 글을 쓰게 된 것이지요. 샘도 되고 노래도 되고 밤새도록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곤 하다가 밤을 지새우게 됩니다.
되돌아가는 길이 없는 길
허 대 영
날개를 꺾어 버리자
비상하려는 울음조차 서러운
찬 서리 위를 걸어가자
때때로 잃어버리는
바보스러움을 달려가게 하고
원색의 캔버스를 찾아가자.
정말 좋아라.
사지는 온통 달려 나가고
사랑한다던 생물의 원리에 순종하는 역겨움을,
내장을 해체한 달무리 곁에 걸고
내면에 흐르는 의식의 물줄기를 터트리며
흐르려 애를 써도 흐르지 않는
두터운 막을 헐어라.
벽은 설산에도 없다
황야에도 없다.
이제, 곧 종착점에 다다르면
하나 남아 있는 퇴화된 작은 날개,
그 날개마저 꺾어 솟대 위에 세우리라.
되돌아가는 길은 없다.
※ 때로는 아픔도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해체하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사랑이 강물처럼 흐르지 않고 막힐 때도 있었습니다. 가슴을 뜯으면 통곡도 하고 죄 없는 술로 자신을 학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되돌아 갈 수는 없었고 되돌아가는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그대의 북창
허 대 영
문이여!
하늘의 푸른 문이여!
떼 지어 흐르는 구름이여!
가슴을 향한 작은 앞자락을 보내 다오.
문이여!
열리어 다오
짙은 안개가 자욱한 대지여!
솟아오르는 작은 입자들 사이에
분해된 내가 가리라.
이마에 주름을 하나씩 엮어
산등성이 떡갈나무 가지 사이의
포근한 보금자리.
아! 문도, 창도 없는 작은 집을 지으리라.
문이 열린다면
단 하나 북으로 열린
창살 없는 창문을 달리라.
삭풍을 맞으리라.
※ 사랑에 아파하고 통곡의 마음은 그래도 여전히 북을 향합니다. 사랑하는 이가 있는 춘천을 향합니다. 사랑을 방해하는 창살을 없애며 다시 사랑을 찾아 떠납니다. 삭풍에도 가슴은 따뜻해집니다.
출 발
허 대 영
아내는
지난 71년 여름에 만났습니다.
가냘픈 손으로 지휘봉을 잡고
무엇인가 발표하던
나의 후배를 가르치던
나의 모교 강당에서 ---- .
그 때
아내는 스물 한 살의
아리따운 처녀였습니다.
뭘 물어 보면
볼은 빨갛게 달아오르고
살포시 고개를 숙였습니다.
45 Kg의 아내가
나의 수선스런 격류에 휩쓸려
소용돌이를 헤쳐 나가지 못할 때마다
가슴에서 가슴으로 흐르는
마디 없는 손가락을 꼭 잡아 주었습니다.
아내는 7년간의 기다림에서 출발한
추억의 보물 창고입니다.
77년 6월,
아내는 나와 함께
80년의 가슴을 덥히고 있습니다.
8,000원에 숨바꼭질하며 --- .
※ 아픔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드디어 1976년 11월 21일에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 글은 결혼을 하고 난 1977년 6월에 쓴 글입니다. 아내와 시작된 이야기와 그 동안의 변화를 정리하였지요. 80년 이후의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월세 8,000원에 세 들어 살던 시기의 시입니다. 가난하고 다툼이 많았던 시기였지만 그래도 행복이 넘치는 나날들이었습니다.
아 내 III
허 대 영
헛구역질하다
잠든
아내의 얼굴에서
나의 분신을 발견한다.
볼에 흐르는
미소 줄기.
※ 우리 사이에 애기가 생겼습니다. 그 아내의 모습은 천사였습니다. 헛구역질하다 잠든 아내의 얼굴에는 미소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 한편이 저절로 쓰였습니다.
엄마의 꿈
허 대 영
가을 달빛 한 올씩 꿰어
아가의 꽃이불을 뜬다.
창문 깊숙이 스며드는
은빛 찬란한 달빛.
얼굴은 온통 하느님 모습이 되어
손가락 마디마다 기쁨을 엮어
어디에선가 오고 있는 아가의
탐스러운 볼에 뽀뽀하고 있다.
생명의 숨소리가 울릴 때 마다
가을 달빛은 꽃이 되고
꽃이 된 가을 달빛에서
달덩이 아가가 웃고 있다.
※ 엄마는 아기를 위하여 무슨 일을 생각하고 있을 가를 상상하고 쓴 글입니다. 엄마의 모두는 아기의 생각으로 가득했던 시기입니다. 신랑은 거의 생각 밖의 존재였던 시기입니다. 신랑도 아기 생각에…….
정인이
허 대 영
정인이는 닮았다.
아빠 닮았다.
확 트인 이마도
옥씨기 이도
누군가 말했지
꼬마 허 선생
안경만 씌우면
아빠와 같대.
그러나 정인이가
정말 닮은 건
남산처럼 우뚝 솟은
뽀얀 주먹코.
※ 드디어 정인이가 태어났습니다. 아빠는 정인이가 아빠를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온통 아빠를 닮았다고 써 놓았습니다. 위 시는 그중 대표적인 시입니다. 7․5조 동요인 셈이지요. 아빠는 아가를 위한 시인이 되었습니다.
정인이 III
허 대 영
일곱 달 배기가
문틈으로 숨어 든
햇살 따라
창틀을 잡고
뒤뚱거리면
손가락만 한 구멍이
포옥
뚫러집니다.
여덟 달 배기가
문풍지를 찾아 온
바람 따라
문고리 잡고
뒤뚱거리면
아기의 키만큼
포옥
뚫러집니다.
아!
아기가 자랄 때마다
창문은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음계를 따라
빛살 구멍을 뚫러 놓고
머리 가득 쏟아지는 햇살에
멱 감고 있습니다.
※ 정인이는 쑥쑥 자랐습니다. 문풍지로 되어 있던 외할머니 댁 문을 일어서면서 뚫러 놓기 시작합니다. 문에는 불규칙적인 음계가 자유롭게 그려지기 시작합니다. 외할머니는 문구멍 막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아가의 아침
허 대 영
장지문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아가의 볼 위에 쏟아지면
아가는 꿈속에서
졸리운 눈을 비비며
하늘나라 아이들을 만난다.
꿈속에서 만난 선녀들이
고사리 손바닥에
뛰놀아도
아가는
아직 잠결.
해님이 보내주신 은빛 선물이
오물오물
아가의 입가에 고이고
통통한 볼에
마구 뛰놀아도
얼굴 가득히 웃으며
꿈속을 걸어가는 아가.
※ 역시 정인의 잠꾸러기 모습입니다. 정인이는 실제로 100일까지는 낮에는 자고 밤에는 놀았습니다. 엄마 아빠가 다 직장에 나갔다 돌아오면 예뻐서 데리고 놀다가도, 밤이 되면 힘들기 시작합니다. 졸음은 오고 정인이는 자지는 않고……. 그래도 너무 예뻐 아래의 시와 같은 시를 쓰게 됩니다.
아가는 햇님
허 대 영
아가는 햇님
고 작은 눈방울
초롱초롱
금빛 햇살 조각
굴러 내리고
아가는 햇님
고 작은 입술
오물오물
붉은 옥구슬
쏟아져 내리고
아가는 햇님
고 작은 볼을
우물우물
예쁜 보조개
포옥 패이고
아가는 햇님
햇님처럼 빛나며
꽃웃음 주는
우리 집 희망
우리 집 꿈.
※ 아기에 대한 사랑이 깊이 배어 있는 시입니다. 정인이는 우리 부부의 모두 이었습니다.
가을 아침(II)
허 대 영
아침이 오는 숲길에
꼬옥꼬옥 찍히는
아기 발자국
젖빛 보조개가
햇살에 반짝이고
은빛 찬란히는 아침을 따라
국화 향기를 나르고 있다.
이른 새벽을 씻는
두레박 내리는 우물가
젖내음 풍기는 가슴에서
눈으로 애기 들으며
엄마를 따라 나선다.
이슬방울 따라 울리는
새벽 종소리.
아가는
햇살이 부신 풀잎을 딴다.
오동통한 손가락 마디에서
터지는 이슬방울 사이로
아스라이 퍼지는 코스모스 가루
아가는
향내 그윽한 꽃밭에서
엄마와 입맞춤하는
꿈을 꾼다.
※ 이때의 시는 정인이로 하여 많이 쓰게 됩니다. 거의 모든 시의 모티브는 정인이로 부터 출발합니다. 가을이니까 아마도 2살 때인가 봅니다.
아빠와 아가
허 대 영
아빠가 귀엽다고
볼을 비비면
까칠 까칠 수염이
턱을 찔러요
아빠는 귀엽다고 끌어당기고
아가는 따갑다고 밀어 내고.
아빠가 예쁘다고
볼을 비비면
퀴퀴한 담배 냄새
코를 찔러요
아빠는 예쁘다고 뽀뽀를 하고
아가는 냄새난다고 멀어져 가고.
※ 그때 아빠는 담배를 피웠습니다. 실제로 정인이는 아빠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막 달려오다가도 뽀뽀를 하려고 하면 도리질을 하여 아빠를 슬프게 한 적도 여러 번입니다.
다 안다.
허 대 영
자박 자박
아, 엄마다.
저벅 저벅
아, 아빠다.
발자국 소리 귓바퀴에 담으면
아스라이 떠오르는 발자국 주인.
난
다 안다.
엄마 발자국
아빠 발자국
※ 정인이 입장에서 쓴 글입니다. 정말 정인이는 엄마가 오면 ‘엄마!’하고 불렀고 ‘아빠가 발자국 소리가 벽 밖으로 듣고 아빠! 하였습니다. 영리한 우리 정인이.
잠든 아가
허 대 영
칭얼칭얼
울다 잠든
아이 콧등에
송글송글
이슬땀이
솟아났어요.
엄마 찾아
꿈속에서
헤매는지
방울방울
이슬땀이
미끄럼 타요.
※ 천사가 같은 우리 정인이 모습입니다. 아마 꿈속에서도 잘 놀고 있을 것입니다.
엄마 눈
허 대 영
엄마 눈 속에
아기가 있다.
엄마가
웃는다.
아기가
웃는다.
온 세상이
웃는다.
※ 엄마와 정인이는 늘 웃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온 세상을 웃길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정인이가 가는 곳에는 웃음이 그치질 않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