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주의권 해외연수 기행문 □
도이 머이[Doi Moi]의 파고, 메콩 델타에서 하롱베이 까지
허 대 영
(통일교육위원, 강원도문인협회장)
어디를 간다는 것은 언제나 우리를 들뜨게 한다.
그러나 이번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통일교육위원 대상 사회주의권 해외연수이기 때문에 보통 여행과는 많이 달랐다. 개방은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은 정치적으로 사회주의 노선을 걷고 있고, 지난 날 한국군 월남 파병으로 우리에 대한 정서가 좋지는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도 있었다. 그러나 통일교육원에서 추진하는 일이고, 관광차 다녀온 분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은지라 마음 놓고 동참하였다.
이번 연수의 목적은 「사회주의권 국가의 변화실상 체험을 통해 국제정세에 대한 폭넓은 시야 형성 및 현장감 있는 교육역량을 배양」하는데 있다. 즉 사회주의권 국가 방문을 통하여 통일교육위원들의 통일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있는 것이다.
연수기간은 11월 18일부터 11월 24일 까지 5박 7일이며, 주방문 지역은 ‘호치민’과 ‘하노이’였다. 잘 알다시피 호치민은 옛 사이공이고 하노이는 현재 베트남의 수도이다. 참가인원은 통일교육위원 18명을 비롯하여 모두 100명이었다.
첫날은 서울 영등포에 있는 하이서울 유스호스텔에 묵으면서 사전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충북에서 오신 박원규 위원님을 처음 만났다. 이 분하고는 연수가 끝날 때 까지 같은 방을 썼다. 청주대성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을 지내신 분으로 점잖고 사려 깊으셔서 마지막 날까지 편안하게 함께 할 수 있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통일교육원이나 현대 아산 관계자 분들은 첫날부터 마치는 날까지 친절과 세심한 배려로 연수를 진행하는 동안 조금의 불편함도 없게 해 주었다.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둘째 날, 오전에 인천공항에서 베트남 항공을 타고 5시간 12분을 걸려 호치민에 도착하였다. 우리나라와 시차는 2시간. 국내에서도 먹어 본 맛있는 월남쌀국수로 늦은 점심을 때우고, 현지 연수지로 가장 먼저 들린 곳은 전쟁기념관이었다. 월남전에 관한 다양한 전시물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었고 우리나라에 대한 기록도 몇 군데 볼 수 있었다. 특별히 전시 감옥, 고엽제, 폭격 등으로 인하여 나타난 참혹한 상황을 관람하면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겠다고 다짐하였다.
저녁 식사 후에는 ‘통일준비의 과제’라는 제목으로 ‘통일을 생각하는 모임’ 문무홍 대표의 강의가 있었다. 꿈은 사람과 삶을 키우는 명약이며, 공동체의 앞날에 대한 관심은 더 큰 나를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하면서, 지금은 말로만 통일의 필요성을 이야기 할 때가 아니라 행동할 때라는 점을 역설하였다.
셋째 날, 새벽에 일어나 밖을 보니 끝없이 이어지는 오토바이 행렬이 장관이다. 베트남인들의 근면함과 성실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오늘의 주일정은 메콩델타 탐방이 다. 이곳에서는 베트남 사람들의 일상생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들판이 끝없이 계속된다. 시장경제를 도입한 후 농업생산량이 크게 늘었는데, 이곳에서는 벼를 5모작 까지 한다. 한쪽에서는 모를 심고 다른 쪽에서는 추수를 한다. 한때는 식량이 모자라 수입했지만 지금은 세계 최대의 쌀 수출국이 되었다. 물소와 묘소가 함께 있는 논 주변의 풍경은 한가롭고 여유가 있다. 가끔 사탕수수와 야자나무 숲이 지나간다.
작은 배, 조금 규모가 큰 배, 코코넛 사탕 제조 체험, 또 다른 곳에서 베트남 전통 가요 공연, 모터바이크, 롤링보트 등을 갈아타며 황토 빛 강물과 오솔길에 만들어진 체험 코스를 섭렵하였다. 주 이동수단은 배다. ‘자이언트 그라미’라는 민물고기를 곁들인 현지식으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메콩 델타는 티베트에서 발원하여 중국, 미얀마, 라오스, 타이, 캄보디아를 거쳐 베트남 남부에 이르는 총길이 약 4,350㎞의 메콩강이 만들어낸 퇴적지형으로 베트남 농업생산의 보고이다.
저녁식사 후에 있은 호치민대학 경제학 교수의 ‘베트남 개혁․개방정책’에 대한 강의는 감명 깊었다. 도이 머이(Doi Moi)정책을 설명하면서 베트남 발전의 근원에는 시장경제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는 베트남 경제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과제로 첫째, 교육 시스템 개혁, 둘째, 기술・인력 인프라 구축, 셋째, 당의 통제와 지방의 군부의 지배체제의 변혁을 언급하였는데 세 번째를 이야기할 때에는 통역도 조심스럽게 전할 만큼 체제에 관한 높은 수준의 발언이었다. 아울러 ‘현재의 북한이 도이 머이가 있기 전의 베트남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 ‘한국은 독일과 베트남 통일의 경험을 잘 살려 혼란 없이 통일을 이루고, 통일 후의 어려움도 잘 극복해 나갈 것으로 본다’며 끝을 맺었다. 우리나라와 관련하여 많은 시사점을 얻은 유익한 시간이었다.
넷째 날, 구찌터널을 방문하는 날이다. 어제와는 달리 날씨가 무덥다. 해발 30m내외의 낮은 구릉에 3층으로 구축된 총연장 250km의 터널은 지하 1층은 생활공간, 지하 2,3층은 이동 통로로 사용하였다. 월남 전쟁에 관한 DVD를 보았는데 우리말로 해설하여 반가웠으나 사실은 1980년, 김정일의 방문을 계기로 제작된 것이라 하여 기쁨이 반감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낙엽 숲 속의 어느 한 곳을 들어 올리니 지하통로로 연결되고, 들어가서 닫으니 다시 감쪽같이 낙엽더미가 되는 위장 출입구를 본 것과 지하 터널에 직접 들어가 본 체험이었다. 천장이 낮아 좁아 오리걸음으로 이동하였는데 날씨가 너무 더워 짧은 거리였지만 무척 힘들었다.
오후에는 통일궁을 방문하였다. 1975년, 당시 사이공 정부의 쿠엔 반 티우 대통령이 지휘하던 지하 사령부와 탈출할 때 이용한 헬리콥터가 있는 옥상을 보면서 나라를 지킬 힘이 없는 정부, 국가 없는 국민, 국가 없는 개인의 행복을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것임을 실감하면서 국가는 국민을 지키고 국민은 국가를 지켜야 함을 다시 한 번 깨달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어서 한국어과가 개설되어 있는 호치민 국립대학의 세미나에 참석하였다. 베트남 현대사분야의 ‘국가 민족의 통일’에 관한 역사학자의 강의, 경제사회분야의 ‘한국과 베트남의 협력’에 관한 경제학자의 강의, 사회문화분야의 ‘한국과 베드남의 협력’에 관한 한국어과장의 강의를 들었다. 특히 베트남의 장래에 대하여 역사학과 교수와 경제학과 교수 간의 미묘한 입장차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녁은 ‘대장금’이라는 한식당에서 삽겹살로 풍성하게 채웠다. 밤에는 류우익 통일부 장관의 ‘통일정책과 통일 준비’에 대한 DVD강의를 들었다. 강의 요지는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와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였다. 특히 통일재원 마련을 위하여 통일항아리가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으며, 통일 항아리는 핵보다 강하다는 신념으로 추진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다섯째 날, 아침 일찍 일어나 탄손누트공항으로 이동하여 하노이행 비행기를 탔다. 국내 비행인데도 2시간가량이 걸린다. 비행 속도가 느리기는 하지만 남북으로 길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점심은 국수와 민물고기 어묵을 주재료로 하는 ‘짜가’라는 베트남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시내 몇 곳을 관광하고 호치민 묘소를 들린 후 대우호텔 2층에서 ‘베트남 경제성장과 발전가능성’에 대하여 하노이 국립대학교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우리나라의 베트남 투자액이 타이완에 이어 2위라는 것과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한국의 투자 확대가 요청된다는 요지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 날 늦은 밤, 모처럼 통일교육위원들 끼리 호텔 18층에 올라가 음료수를 마시면서 ‘통일교육위원의 역할강화와 우리들의 자세’라는 주제로 2시간 30분가량 좌담회를 개최하였다. 이 자리에서는 통일교육위원 활동의 어려움과 개선방안을 논의하고, 더 열심히 활동하여 통일을 앞당기는 데 공헌하자고 마음을 모았다.
마지막 날, ‘하롱베이’에 가는 날이다. 하노이에서 버스로 4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날씨가 흐리더니 비가 오락가락한다. 우리나라 초가을 날씨다. 그렇다 하더라도 천하의 절경 하롱베이가 어디를 가랴! 수평선 너머에 3,000여개의 섬들이 성곽을 이루고 있다. 하롱(Halong,下龍)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용(龍)이 바다로 내려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설에 따르면 한 무리의 용들이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했고 침략자들과 싸우기 위해 내뱉은 보석들이 섬이 되었다고 한다. 1962년에 국립공원이 되었고, 1994년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선포되었다. 해물이 중심이 된 풍성한 선상 식사를 하였다. 배를 타고 ‘뽀뽀 바위’를 비롯하여 뛰어난 경관의 여러 섬과 동굴을 돌아보니 4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배는 서서히 선창가에 닿았고, 우리는 하노이 공항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현지시간으로 밤 11시 10분. 비행기에 오른 후 기내식을 먹고 한 잠을 자고 나니 어느새 인천 앞바다이다. 은하수처럼 가로등 길이 나 있고 도시는 반짝반짝 빛나며 별 무리를 이루고 있는데, 저 멀리 북녘의 깜깜한 모습이 땅이 분단된 것과 마찬가지로 남・북간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의 국토는 아름답다. 이번 연수의 목적은 베트남의 통일 경험을, 아름다운 조국 대한민국의 통일과 통일 후의 정책 결정을 위한 밑거름으로 활용하는데 있음을 우리는 안다.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상념에 잠겨 본다. 첫째, 무조건 전쟁은 없어야 한다. 둘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지켜야 한다. 셋째, 통일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행동해야 한다.
이번 연수는 지금까지 말로는 통일, 통일하면서 실제로 통일을 위하여 무엇을 하였는지 자문해 보면서, 앞으로 통일교육위원으로서의 해야 할 역할을 재확인하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조국수호의 사명을 다할 것을 다짐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 연수를 위하여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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