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아버지

미스터가가멜 2006. 6. 21. 13:39

나는 2002년,

두란노 아버지학교를 다녔다.

첫주는 결석하고

4주 동안 춘천에서 제천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에서 밤까지를

(어떤 때는 춘천에 도착하면 2시가 다되는 경우도 있었다.)

춘천과 제천을 오가는 시간으로 보낸 것이다.

 

목사님과 몇몇 집사님들과 함께 한

아버지 학교 생활이어서 그곳에서의 교육 뿐만 아니라

오가는 길에서의 많은 이야기 나눔도 유익한 시간이었다.

 

나는 찬양과 프로그램,

나의 고백과 팀원들의 참회를 들으며

참 많은 것을 느끼고

감격하고 실천을 다짐하는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나에게 가장 큰 감동으로 닥아온 것은 아버지를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그것은 나와 아버지 뿐만 아니라 나와 우리 아이들과의 관계로도 연결되었다.  

 

특히 아버님하고는 참 좋은 관계인듯 하지만

가슴은 항상 아버지에 대한 불만과

증오에 가까운 감정이 남아 있었다.  

 

아버지 학교를 통하여 

아버지를 이해하고, 그 표징으로 

아버지를 허깅하리라 마음먹었다. 

이를 통하여 아버지와 사이에 있던 얼음을 깨고자 하였고

형식적인 아닌 실제인 부자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여러 차례 시도한 끝에

허깅에 성공 하였다.

 

그러나 마음 속에 있는 얼음은 그대로 있었다.

열리지 않고 더욱 굳게 닫혀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스스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어려서의 응어리짐은 이 나이가 되어도

허용되지않는 아픔으로 남아

초가집을 짓고 머리 한 켠에 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아! 참 이 어리석은 사람아."

하며 자신을 탓하기도 하지만

하루 이틀에 굳어진 것이 아니기에

60이 다 된 이 나이에도

아직도 닫힌 채로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최근에 아버님께서 치매끼가 있으시다.

병원에도 입원하셨다가 퇴원하셨고

작은 수의 뺄셈도 못하신다.

당신도 잘모르는 과정을 거쳐

아무도 모르게 멀리 다녀 오시기도 하시고

춘천 성심병원에 입원하시고는 

그곳을 가평이라고도 하신다.

 

가슴이 아프다.

많이 아프다.

무지하게 아프다.

기도하면서, 만나 뵙고 오면서 많이 울었다.

 

가까이 다가 가지 못하고

굳어진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자신의 옹졸함을 탓하면 무엇하랴

행동하지 못하고 있는데,

 

아! 아버지,

우리 아버지

전통적 권위 속에 갇혀 사셨던 우리 아버지.

지금은 그 틀을 벗어나기 위한 아픔인가

어린 아이같은 천진난만한 모습을 뵈면서

가슴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어쩔건가

어찌할건가?

 

     2006.6.21 

 

     갑자기 아버지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