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네까?"
지난 월요일,그러니까 2011년 12월19일 북한 김정일이 이미 이틀 전인 17일 오전 8시30분에 사망했다고 발표된 날 저녁, 무심코 퇴근한 나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부엌 어귀에 라면 10개와 쌀1봉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시장을 보다가 동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길래 자기도 샀고 은행에서 현금도 조금 찾아 놓았다고 나름대로 전쟁 준비를 하였음을 대견해 했다. 박스로 팔지 않아 그래도 나름대로 많이 샀다는 라면 10개가 얼마나 보탬이 될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전쟁이 나면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할까라며 걱정이 태산인 아내의 큰 눈이 문득 귀여웠다. 당신이라면 상(喪)중에 전쟁을 벌이겠냐고 했더니 북한은 이미 정상적인 집단이 아니지 않느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1994년3월,북한의 조평통(조국평화통일위원회) 박영수의 소위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했던 당시, 나는 베이징 주재원으로 북한 사업을 담당하고 있었다. 정부로부터 특별히 ‘대북접촉승인’을 받고 북한 기업인과 대사관 직원들을 만나 대북 사업을 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따라서 그들과는 친분이 있었고 술자리도 자주 했고 비교적 속에 있는 말까지 털어 놓을 수가 있었다.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5년 만에 대통령을 바꾸는데 너희들은 그렇지 않느냐는 물음에, 일고의 망설임도 없이 ‘시원찮으니까 그렇지’라는 대답을 들은 것도 당시의 일이었다. 술이 거나해지면 반드시 ‘노동당가(歌)’ 같은 정치색 짙은 노래들을 부르고 ‘미제의 앞잡이’ 운운하며 꼬나 보기도 일수였던 그들은,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듯 그렇게 비정상적인 사람들은 아니었다. 당시 유네스코의 북한 대표로 있었던 사람을 알고 지냈는데 그는 유창한 영어와 상대방을 배려하는 훌륭한 인격을 갖고 있었다. 세계 정치와 경제를 한 손에 꿰고 있을 정도로 박식한 사람이었다. 그의 말버릇 중에 지금도 기억 나는 것이 있다. 억세지 않은 평안도 사투리로 그는 늘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네까?’라고 우리에게 묻곤 했다.
김정일 사후의 북한을 걱정하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미한 국제 정세 속에서 나는 요즘 문득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네까?’라고 나에게 물어오는 그의 웃는 모습이 자주 떠오른다. 북한의 앞날과 그에 따른 한반도 정세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칠 중국, 내가 중국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와 거기에 따른 과연 내가 북한이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당신이라면’이라는 단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틀릴 것이기에 비교적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편리함이 있다. 바둑을 둘 때, 시선은 하변에 머물러 있으나 머리 속으로는 온통 상변을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상대방에게 나의 의중을 보이지 않으려는 생각과 함께 실제로 하변에서 흘러간 돌의 흐름이 상변으로 미치는 파장을 연구하고 있음이다.
내가 중국이라면 나는 북한을 보면서 우선 미국을 생각할 것이다. 가장 직접적이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북한은 어떠한 희생을 치루고라도 지켜내야 할 마지노 선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북한의 서투른 도발로 서해안에 미국의 항공모함이 들어오게 되는 우(憂)를 다시는 범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저절로 굴러 들어올 천연자원을 비롯한 천문학적인 경제적 가치를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북한 내의 대세에 따를 것이다. 김씨 왕조의 힘은 우리의 생각을 훨씬 앞지른다. 이는 전지전능한 종교의 힘에 가깝다. 따라서 김정은의 세습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이고, 어린 그에게 힘을 실어줘 그로 하여금 중국의 고마움을 느끼게 할 것이다. 노회한 김정일 보다는 아직 힘이 필요한 김정은을 다루기가 훨씬 편할 것이다.
내가 만났던 북한 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민족의 주체를 위해서는 석 달 정도는 굶어도 좋고 또 그렇게 훈련되어 있다고 얘기했다. 중국과 중국 사람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미 그들은 중국 없이는 하루도 살 수가 없이 옭아 매여 있음을 실토했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한 나라와의 무역 의존도가 90%에 육박한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 주고 있다. 내가 북한이라면 나는 중국을 활용할 것이다. 중국과 미국의 관계를 정확히 꿰뚫어 맹목적으로 추종하지만은 않을 것임을 그 때 그 때 확인시킬 것이다. 중국이 얼마나 북한을 필요로 함을 알기 때문에 때로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또는 대남 국지 도발을 감행해 중국의 애를 태울 것이다. 이는 물론 철저한 계산 하에 전면전으로 확대되지 않을 것임을 전제로 해야 하는데 전면전은 곧 미국과의 전쟁이며 중국이 개입할 수 있는 구실이 전혀 없는 자살 행위임을 알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 사람이 통치하는 나라가 아니다. 8,000만 공산당원과 원로들에 의해서 수 십년에 걸쳐 철저히 검증된 9명의 걸출한 리더가 다스리는 나라이다. 세계 어느 나라의 지도자도 이 아홉 명을 동시에 만날 수는 없다. 13억 인구와 56개 민족, 그리고 우리 남한의 100배에 가까운 대륙을 호령하는 이 아홉 명의 리더가 베이징 주재 북한 대사관 김정일의 초상화 앞에서 두 번에 걸쳐 동시에 경건하게 조문하는 광경은 차라리 전율을 느끼게 한다. 역설적으로 중국과 미국의 팽팽한 균형이 한반도의 평화를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다. 내가 미국이고 중국이 없었다면, 나는 북한의 핵 기지를 이미 오래 전에 폭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깊은 눈매로 바라 보던 그의 모습은, 자국의 이익을 위한 치열한 나라간의 경쟁에는 반드시 철저한 계산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전략이 숨어 있음을 가슴으로 전해 주고 있다.
함기수 자문위원 / 세계화전략연구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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