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 강원 CBS 개국 18주년 기념 성지순례기저자허대영 출판예맥 | 2016.3.15. 페이지수417 | 사이즈 152*226mm판매가서적 16,200원
책소개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은 바울의 1,2,3차 전도여정지를 방문하면서 ‘바울은 어떻게 그렇게 열정적으로 전도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와 ‘하나님은 바울의 전도를 돕기 위하여 어떤 고난과 능력을 준비해 주셨는지’ 그리고 ‘바울의 그 전도 열정은 오늘날 우리와 어떤 관련이 있으며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고 강하게 역사하고 있는지’를 보고 느끼고 다짐하면서, 간간히 기독교 유적 이외의 터키와 그리스를 역사와 문화, 유물을 정리하여 그리스 로마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가능하도록 다양하게 정리하였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저자
허대영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목차
추천의 글
축하의 글
머리말
01 들뜬 마음으로 성지순례를 준비하며
02 이스탄불, 드디어 꿈의 도시에 첫 발을 딛다
03 말씀에 순종한 아브라함의 고향 하란을 찾아서
04 바울의 고향 다소를 지나 데린쿠유의 뜨거운 믿음을 만나다
05 독특한 자연환경에서 신앙의 꽃을 피운 가파도키아
06 터키 최고의 자연+인문 = 파묵칼레+히에라 폴리스
07 -A.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넘치는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들
07 -B. 로마 문화예술의 흔적에서 바울의 강론을 듣는 에배소
08 거친 풍랑을 헤치며 수없이 오갔을 선교의 뱃길, 에게해
09 신들의 놀이터, 아크로폴리스에서 주님을 증거하다
10 고린도, 무너진 유적더미에서 들려오는 바울의 음성
11 뜨거운 믿음을 만나는 공중에 떠 있는 수도원 메테오라
12 비잔틴 고도古都를 바라보며, 영광 회복을 기원하며
13 -A 성스런 지혜 아야 소피아 성당에게 명하노니, 기도하라
13 -B 극동의 길손, 보스포러스 유람선에서 마음을 놓치다
14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는 믿음의 나라로 인도하옵소서
부록 : 바울의 생애와 선교활동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책 속으로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출판사서평
기독교의 세계화에 가장 큰 공헌을 남긴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 떠난 성지 순례 길 위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실재하심을 확인하고
예수님을 동행한 바울을 만나 묻고 답하는 등 성스러운 대화를 하면서
말씀에 기록된 것을 하나하나 확인해 나가는 감동적인 과정을
사진과 지도를 곁들여 기록한 성지 순례 지침서이자 신앙고백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지 순례의 길로 보내 주시는 의미를 가슴 깊이 새기면서 인천공항을 터키 이스탄불 공항을 거쳐 샨느우르파, 하란, 다소를 거쳐 카파토기아, 파묵칼레, 소아시아 일곱교회, 에베소, 아테네, 고린도, 마테오라, 베뢰아, 데살로니가, 아볼로니아, 암비볼리, 네압볼리, 빌립보, 다시 이스탄불의 성지를 순례하며 바울의 1,2,3차 전도여정지를 방문하면서 ‘바울은 어떻게 그렇게 열정적으로 전도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와 ‘하나님은 바울의 전도를 돕기 위하여 어떤 고난과 능력을 준비해 주셨는지’ 그리고 ‘바울의 그 전도 열정은 오늘날 우리와 어떤 관련이 있으며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고 강하게 역사하고 있는지’를 보고 느끼고 다짐하면서, 간간히 기독교 유적 이외의 터키와 그리스를 역사와 문화, 유물을 정리하여 그리스 로마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가능하도록 다양하게 정리하였다.
출판사 리뷰
“성지순례에서 얻을 것은 풍경을 보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증거한 바울을 만나고
최종적으로는 나를 다시 발견하는 것”
성경 속에나 있는 이야기를 현실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고단하나 성스러운 순례 길 위에서
성경 구절과 형식에만 매몰되어
주님 나라의 고아가 되어 갈 곳을 잃을 뻔한 나를 다시 되찾아
그분과 뜨거운 마주침을 통하여 새로운 경험과 감동을 선물 받았던
점점의 시간과 사진과 지도를 잘 버무려 정리한 진솔한 기록들.
글에는 어떤 글이든지 지향점이 있다. 이글의 지향점은 앞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은 어떤 분인지’와 ‘그분은 나와 어떤 관계인지’ 그리고 그분을 위해 목숨을 다해 전도하신 바울에게서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고 다짐해야 하는지’가 그 대상이다.
저자는 이 세 가지 물음에 합당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피상적인 풍경을 보고 재미를 느끼며 맛에 취하고 새로움에 대한 흥미를 느끼는 단순한 여행과는 다른, 성지 순례의 본질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 고대와 현대를 오가는 통사적 관점에서 보는 성지, 말씀, 느낌 그리고 다짐들.
저자는 바울의 전도 사역에서 그 시대의 시대적 바탕을 읽을 수 있고 바울이 만나 하나님을 다시 만나고 오늘날의 현장에서 믿음의 방향을 바로 세우는 빛나는 샛별을 곳곳에서 발견하고 기록을 남기고 있다. 아래는 바울의 생가터를 방문하고 기록한 부분이다.
09:25, 바울의 생가 터를 방문하다.
바울은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가장 탁월한 인물이다. 예수가 죽은 지 불과 몇 년 뒤에 회심한 그는 새로운 종교운동, 즉 그리스도교를 지도하는 사도가 되었으며, 그 운동이 유대교의 한계를 넘어 세계 종교가 되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가 남긴 서신들은 현존하는 그리스도교 문헌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바울의 서신들은 신학적인 정교함과 목회적인 이해를 잘 드러내고 있으며, 그리스도교의 생활과 사상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 바울(Paul) -----
바울은 AD 10(?)년 경에 다소에서 태어났다. 67세 전후하여 이탈리아 로마에서 사망하였다. 바울의 생애에 대해서는 ‘신약성경’ 외에는 믿을 만한 자료가 없으며, 그 1차적인 자료는 바울이 쓴 서신들이다. 그 가운데 로마서, 고린도 전후서, 갈라디아서는 바울 자신이 직접 쓴 서신들이라는 데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또 많은 학자는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서, 빌레몬서 등도 바울의 서신으로 간주한다. 에베소서, 골로새서 등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나 긍정하는 편이다. 성서학자들은 목회서신인 디모데 전후서, 디도서는 바울의 서신이기는 하나 쓰인 것은 바울 시대보다 훨씬 후대에 정리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바울의 개종과 선교 활동은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바울 사후 몇 년 뒤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바을과 관련된 성경이지만 바울이 직접 쓰지 않은 것으로 보는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는 누가라고 생각되고 있으며, 이 견해는 오늘날에도 많은 학자들이 지지하고 있다.
바울의 생가로 알려진 공원 터에 우물이 있고 물을 끌어 올리는 굵은 쇠바퀴가 달린 도르래가 있다.
바울은 로마군에게 체포되었을 때 ‘길리기아의 다소 출신 유대인으로 결코 소읍이 아닌 도시의 시민’이라고 자랑스럽게 밝힌다. 자부심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출신배경과 로마시민권, 가말리엘 가문에서의 교육, 천막기술자 등은 그로 하여금 세계 선교사역을 담당할 수 있게 준비된 사도였음을 의미한다.
다소에 있는 사도 바울의 우물가에 서서 그때 그날들을 생각해 보았다. 여기가 세계 선교의 출발점이 아닌가. 한 사람의 영향력이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앞으로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 소아시아의 7대 교회와 그리스의 아테네, 고린도, 마테오라, 네압볼리, 빌립보, 암피볼리, 베뢰아, 아볼로니아, 데살로니가를 거쳐 이스탄불로 순례의 여정을 이어갈 것이다.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뜨거운 은혜를 체험하고 싶어 하면서도, 바울처럼 뙤약볕 아래를 걸어간다거나 풍랑이 심한 바다 위에서 조각배를 타볼 생각은 해보지도 않는다. 그가 다닌 험한 순례길을 우리는 편안하게 버스와 비행기를 타고 다닌다. 갈릴리 바다에서 베드로라는 큰 인물을 낚으신 예수님은 다메섹 황토길 위에서 자신의 구원사救援史*를 완성할 바울이라는 또 다른 반석을 거두셨던 것이다.
자! 여기서부터 바울 따라 떠나는 여행이다. 그의 발자취를 그가 다닐 길 그대로 그 순서대로 다닐 수는 없지만 곳곳에서 그를 만나고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전하였는지를 보고 듣고 깨달으리라.
* 구원사 : 원래 사람을 사람답지 못하게 만드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본래 인간은 죄와 악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나, 그리스도의 죽음의 값으로, 악마의 세도는 무너졌으며, 인류의 죄는 용서받게 되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 혹은 구세주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하느님의 인류 구원의 역사를 구원사 혹은 구세사라고 한다(로마 10,9-10).
사도 바울 생가터 앞 광장 주위의 집들은 거의 사백년은 넘은 오스만 제국 시대의 집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오스만 제국 시대 건축 양식이라는데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어울려 조화가 잘 이루어진다. 바울의 집터로 추정되는 발굴 현장은 유리로 덮어 놓아 실물을 자세히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다소의 옛 도시는 4~6m나 땅 속으로 파 묻혀 버렸기 때문에 발굴하려면 그만큼 파고 들어가야 한다.
바울도 이곳의 아이들처럼 어린 시절을 보냈으리라. 몰려다니며 장난도 치고 사고도 저지르며 어린 시절을 보냈으리라.
09:45, 바울의 생가터에서 출발하다
생가터 들어가는 입구에 큰 교회가 서 있는데 아직 마무리 작업을 하지 못한 듯하다. 물어보니 짓는 것 까지는 허락하였는데 그곳에서 교회를 열고 예배를 드리는 것에 대해서는 허가가 떨어지지 않아 그런 상태로 있는 것이라 한다. 건축의 자유는 있지만 신앙의 자유가 없는 현장을 볼 수 있었다.
09:56, 클레오파트라의 문(바울의 문) 에 도착하다.
----- 클레오파트라의 문에 얽힌 이야기 -----
BC 41년 타르수스(다소)를 순방 중이었던 로마의 집정관 마르크스 안토니우스는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를 타르수스로 소환하여 문책할 생각이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소환에 선뜻 응하지 않고 몇 번이나 독촉을 받은 끝에 타르수스의 키드누스 강의 선상 파티에 안토니우스를 초대하였다.
그 날 저녁 클레오파트라의 배에 오른 안토니우스는 눈이 휘둥그레지는데 그녀는 금은 장식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배 안에는 비스듬히 누워 안토니우스를 맞이하였다. 그리고는 시녀에게 식초를 잔에 담아 오라고 명령하고는 한 쪽 귀걸이를 떼 내어 식초 잔에 담근 후 서서히 녹아 버린 진주를 단숨에 마셔버리고 다시 귀걸이 한 쪽을 술잔에 마저 담그려 하자 안토니우스는 그 진주의 귀함과 클레오파트라의 대범함에 문책할 마음을 철회하고 클레오파트라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다고 한다.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를 영접한 키드누스 강가에 세웠다고 전해지는 문이 바로' 클레오파트라의 문'인데, 후에 기독교 국가가 된 비잔틴 제국은 이 문을 바울이 다닌 문이라고 하여 '바울의 문'이라고 불렀다한다.
이 '클레오파트라의 진주' 이야기는 로마의 학자 플리니우스(Plinius)가 쓴 책 '박물지'에 기록된 내용이다.
----- 사족 : 클레오파트라/시저/안토니우스 -----
클레오파트라 7세 필로파토르(Cleopatra VII Philopator, 기원전 69년 - 기원전 30년)는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여성 파라오인데, 남동생과 결혼하여 공동 황제가 되었다.
이집트는 알렉산더대왕이 점령하기 전에 이미 31개의 왕조가 교대로 통치하여 왔다. 알렉산더 대왕이 기원전 4세기경에 이집트를 정복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알렉산더가 사망하자 알렉산더 제국은 그의 장군들 사이에서 분할되어 이집트는 프톨레마이오스가 차지하여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들어서게 된다. 클레오파트라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군주인데, 로마의 카이사르가 이집트를 점령했을 때 클레오파트라는 점령자인 카이사르에게 몸을 맡긴다. 카이사르가 죽은 후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의 부하였던 안토니누스와 다소에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 당시 로마는 카이사르의 양자 옥타비아누스와 클레오파트라의 도움을 받은 안토니누스 간의 대립이 있었고, 악티움 대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하게 되어 로마의 패권을 차지하게 된다. 전쟁에서 패배한 클레오파트라는 침대에서 독사가 물게 하여 죽었다고 하며, 그녀의 죽음과 함께 이집트는 로마제국의 속령이 되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와 사이에는 아들을 두었다고 전하여지고 있으며 안토니우스와는 정식 결혼하여 아들 둘, 딸 하나를 두었다.
클레오파트라의 문은 시내 한 복판에 위치하고 있는데, 파란만장한 역사의 현장을 다 지켜보면서 오늘날 그 일부만 남아 다소의 거리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주변에 있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Hello' 하며 반가움을 표한다.
----- 사족 : 알렉산더에 대하여 알아보자 -----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BC 356~BC 323)은 마케도니아의 왕(재위 BC 336~BC 323년)으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학문을 배웠다. 20세에 왕위에 올라 그리스 여러 도시의 반란을 진압하였다. 기원전 334년에 해외 원정에 나서 페르시아·시리아·페니키아·이집트를 차례로 정복하였다. 그는 정복한 곳마다 그리스 사람을 옮겨 살게 하여, 그리스 문화와 아시아 문화를 교류 융합시킴으로써 헬레니즘 문화의 기초를 이룩하였다.
10:06, 클레오파트라 문에서 출발하다
11:00, 고속도로 상에 있는 ‘LOKANTA’라고 쓰인 식당에 도착하다.
고속도로에 있는 식당이다. 이른 점심 식사를 하다. 과일도 있고 하여 꽤 먹은 셈이다. 바울은 어땠을까? 여기저기 다니느냐고 이국 음식을 많이 먹었을 터인데 혹 식성이 좋아 별 어려움은 없었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고속도로이지만 바울은 먼지가 풀풀 날리는 길을 걸어갔을 것이다. 지금부터 2,000년 전에 걸어서 가는 길은 피곤한 길이었을 것이다. 반겨주는 사람이 있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고통의 길을 사랑의 길로 변하게 한 것은 무엇일까?
이슬람 국가에서 기독교 유적지가 살아남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구약시대의 유적이 상당부분은 남아 있는 이유는 그들도 구약의 상당부분을 기독교와 공유하기 때문이다. 신약과 관련된 곳은 그냥 보통 유적에도 못 미칠 정도의 관심을 보이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이제 관광용으로 가치가 있다고 하여 보존과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 역사의 기록, 성경 말씀, 현장의 모습을 전문적으로.분석적으로 접근하며, 곳곳에서 우리나라와 동병상린의 기억들을 함께 전하는 다양한 종합 기록을 가슴으로 담아내며
터키는 우리를 현제의 나라로 보고 있다고 한다. 그에 비하여 우리의 관심은 그렇게 넉넉했던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터키에 대하여 서술한 글을 읽어 보자.
터키와 이스탄불에 대하여 알아보자.
터키 국기는 빨간 바탕에 흰색 초승달과 별 하나는 강렬한 인상을 준다. 터키에서는 가는 곳 마다 국기가 게양된 것을 볼 수 있다. 자랑스럽게 나부끼는 것을 보고 이 나라의 애국심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국기를 많이 다는 것이 애국심과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으나 이는 관심의 표현이 아니겠는가?
----- 터키에 대하여 ------
터키공화국은 서남아시아의 아나톨리아와 유럽 남동부 발칸 반도의 동 트라키아에 걸친 나라이다. 수도는 앙카라이다. 터키는 여덟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북서쪽으로는 불가리아, 서쪽으로는 그리스, 북동쪽으로는 조지아, 동쪽으로는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이란, 남동쪽으로는 이라크와 시리아가 있으며, 북쪽에는 흑해, 남쪽으로는 지중해가 있다.
아나톨리아와 동 트라키아 사이로는 마르마라 해와 다르다넬스 해협, 보스포루스 해협이 있는데, 이 바다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이다. 따라서 터키는 두 대륙에 걸친 나라이므로 지정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요지를 차지하고 있다. 인종상 터키인이 국민 대다수를 이루며, 그 다음으로는 쿠르드인이 있다. 터키의 주요 종교는 이슬람이며, 공용어는 터키어이다.
터키는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후계 국가이다. 제1차 대전(1914년~1918년)에서 동맹국 편으로 참전 후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고 1923년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지도로 현대의 정치체제가 확립되었다. 터키는 한국 전쟁에서 국제 연합군으로 참전하였으며, 1952년에는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가입하여 지중해로 진출하려는 소련의 팽창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였으며 민주공화국으로 발전하고 있다.
국토 면적은 호수를 포함한 터키의 육지 면적은 783,562km²이며, 아시아에 속한 영토는 전국토의 97%인 5755,688km²이고, 유럽에 속한 영토는 3%인 23,764km²이다. 터키는 길이로는 1,600 km, 폭 800 km에 이르며, 세계에서 37번째로 넓은 나라이다.
터키는 6·25 때에 우리나라에 군대를 파견하여 인연을 맺었다. 한국과 터키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오직 인류애로서 지원병을 파병하였다. 당초 한국전쟁에 5000명 정도의 병력을 보낼 작정이었으나, 모병결과 1만5000명에 달하는 병력이 자원을 했으며, 1만4936명을 파병했다고 한다. 한국동란에 참여한 군인이 운영하는 상가 간판에는 코렐리(Koreli-한국인 뜻)라는 이름을 표시하고, 후손 이름 앞에 `코넬리`라는 표기를 하고 있으며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하며, 그만큼 우리에게 호감과 사랑을 가진 나라이다.
터키는 유럽의 선진국보다 한국인을 일등 국민으로 대우를 한다고 하니 세계에서 한국인을 가장 사랑하는 유일한 국민이다. 터키는 지금까지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생각하며 한국이 잘 살게 된 것을 정말 기쁘게 생각한다고 한다. 88 올림픽 때에는 형제의 나라에서 올림픽을 한다며 기쁜 나머지 24시간 내내 TV 방송을 하기도 하였고, 국제 대회 때마다 한국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다.
1973년 한국과 터키는 우호 협력의 관계를 보다 증진시키고, 한국 참전 전사자를 기념하기 위하여, 터키 앙카라의 옛 기차터미널 근처에 '한국공원'을 한국 정부가 조성하였고, 한국 여의도 인도네시아 대사관 옆에 '앙카라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터키는 우리와 같은 몽골족이고 언어는 같은 알타이어를 쓰고 있다.
이제, 우리가 첫날밤을 보낼 이스탄불에 대해서 알아보자. 동서양의 교차되는 혼합된 도시 이스탄불. 우리는 밤에 도착하여 휘황찬란한 겉모습만 보면서 유라시아의 관문에서의 첫날을 시작하였다.
----- 이스탄불(Istanbul) -----
옛 이름은 Constantinople, 고대 이름은 Byzantium. 터키의 최대 도시이며 바다에 접해 잇는 항구이다. 흑해 어귀에 있는 구릉성 3각형 반도의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다. 보스포루스 해협의 양쪽에 걸쳐 있어서 유럽·아시아 양 대륙에 속한다.
이스탄불의 이름은 네 번 바뀌었다. 비잔티움은 BC 8세기말경 그리스인들이 식민지로 건설한 곳으로서 BC 512년 페르시아 제국으로 넘어갔고, 그 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정복되기도 했다. 로마 공화정의 지배를 받다가 324년,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수도로 채택되면서 '신로마'(New Rome)로 개칭되었다. 330년에는 제국의 중심지가 되었고, 뒤에 콘스탄티노플로 다시 이름이 바뀌었다. 오스만 제국의 메메드 2세(Mehmed II)* 치하에서 이스탄불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고, 1453년에는 오스만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그 뒤 1922년까지 평화로운 번영의 시기가 지속되었다. 1923년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수도가 앙카라로 옮겨졌고, 콘스탄티노플은 1930년 이스탄불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개칭되었다.
이스탄불에는 유물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에레바탄 사라이 궁전(지하 궁전), 콘스탄티누스 궁전('텍푸르 사라이'라고도 함), 하기아 소피아(아야 소피아), 톱 카프 궁전, 돌마바흐체궁전, 슐탄아흐멧 모스크(블루모스크), 히포드롬, 갈라타 다리, 포스포러스대교 등이 유명하다.
* 메메드 2세(Mehmed II) : 무라드 2세의 넷째아들로 여자노예의 몸에서 태어났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을 두 차례(1444~46, 1451~81 재위 )지냈다. 뛰어난 지도자로서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켰다.
이스탄불에 대해서는 마지막 날 더 이야기하기로 한다. 갈매기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시아와 유럽을 넘나들고 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경계는 자연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콘스탄티노플’은 기독교와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도시 이름을 자기 이름을 본 따서 콘스탄티노플이라고 하였다. 관련하여 찾아보니 종교학 사전에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조’가 나온다. 이 신조는 381년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아리우스주의(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인하는 아리우스(Arius)의 신학 사상, 삼위일체를 부인)를 이단으로 단죄하였다.
◈ 우리 자녀에게 해야 할 참 좋은 투자, 제일 먼저 해야 할 투자를 생각하며, 아동문학가가 초등학생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쓴 성지 이야기
저자가 몇 군데서 밝힌 바와 같이 성경에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않고도 믿는 믿음이 강한 사람에게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도 있으나(요1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믿음이 약한 분들이나 믿음의 역사 현장을 보고 싶은 욕망이 넘치는 분들에게는 성경적 지식과 기록만으로는 만족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여 저자처럼 직접 가서 보고 듣고 느끼고 하는 과정을 통하여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실천의 다짐도 가능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좋은 투자라는 글을 통하여 성지순례의 효과에 강하게 전해 주고 있다.
저자는 아동문학가이다. 그의 표현방식에는 아동들의 동심을 고려한 언어적 선택이 고려되어 있다. 하여 초등학생이라도 글을 읽을 줄 알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묘사하여 어린 시절의 성지 접근을 도와주고 있다.
저자는 그의 저서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을 찾아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고 있다.
l 생각 조각 l
좋은 투자
2012.5.6.10:38
자녀에게
땅이나 집을 사 준다거나
좋은 과외 공부를
많이 시키는 것보다
어린 시절에 성지 순례를 보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예수님을 나의 예수님으로
가슴 깊이 간직하게 하고
그분과 평생
동행할 수 있는
벅찬 감동을 주는 것.
가장 좋은 투자는 하나님과 진실로 만나게 해 주는 것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특별히 생각조각에서는 어린 시절에 성지 순례를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2학년이 되면 세계사를 일부 배우게 되는 데 그때부터 학생들이 눈이 세계로 뻗게 된다. 바로 이때에 성지 순례로 하나님을 만나게 해 주는 것이, 예수님을 만나게 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투자임을 시시하고 있다.
우리 격언에 남들은 돈을 주고 팔아서라도 모면하고 싶은 고생을 일부러 돈을 주고 사서 맞아들인다는 뜻을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이 있다. 또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말도 있다. 이 모두 젊은 나이에 겪은 고난과 시련들이 언젠가 본인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됨을 시사하고 있다.
초등학생 때, 또는 중등 학생 때 성지 순례는 고통이 동반된다. 지루하게 타야 하는 버스승차, 아름다운 모습도 아니고 새롭지 않는 그렇고 그런 모습을 날마다 보아야 하는 지루함, 사막에서 펼쳐지는 더운 날씨와의 싸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이나 설명 등이 학생들을 힘들게 할 것이다. 그러나 소년 시절의 경험은 오랫동안 기억의 저편에 숨어 있다가 언젠가는 반드시 살아나와 하늘을 향한 그들의 소망을 활짝 피워 내는데 큰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
이 책도 어린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문체로 쓰였다. 소년소녀 시절의 경험을 영원히 간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자녀들에게 일독을 할 수 있도록 권하고 싶다.
◈ 성지 순례를 가장 먼저 가야할 분도, 성지순례기를 가장 먼저 읽어야 할 분도 목회자들이라는 생각에 그 분들을 위한 최소한 자료를 사전 대비, 현지 메모, 순례 후 필요한 자료 검색 등을 통하여 성지 순례 안내자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저술.
성직자는 성지 순례를 다녀와서 강단에 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현장감 있는 말씀을 전할 수 있다. 아니면 적어도 관련 성지 순례기를 숙독해야 하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성지순례는 사전에 많은 것을 살펴보고 준비해야 한다. 18세기의 영국의 시인이자 비평가이며 수필가였던 사무엘 존슨은 ‘여행에서 지식을 얻고 돌아오고 싶다면 떠날 때 지식을 몸에 지니고 가야 한다’ 말하고 있다. 즉 사전에 많은 준비를 하고 가면 아는 것이 많을 것이고 그 만큼 더 많이 볼 수 있다는 말이다. 특히 성지순례는 사전 준비를 많이 할수록 풍성한 감동을 맛볼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무너진 건물더미나 오래된 성터, 그리고 알 수도 없는 희미한 흔적들만 보고 다니다가 오게 된다. 감동이 없는 아주 무의미한 여행을 하게 된다.
아울러 여행을 다니면서도 기록을 남겨야 함을 강조 하고 있다. 저자는 ‘나는 메모광이다. 특히 여행에서는 메모광이라고 해야 할 정도이다. 이번에도 작은 노트 두 권을 썼다. 기억은 불명확하고 또 오랫동안 파지할 수 없다’ 고 말하고 있다.
또 다녀온 뒤에는 반드시 기록을 남겨 놓아야 한다. 다녀온 즉시 정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데 그 이유는 시간이 갈수록 기억이 희미해지고 다양한 경험이 소멸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전 준비, 현지에서의 기록, 다녀온 뒤 정리 등이 일관성 있게 이루어질 때 좋은 성지 순례기를 남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목회자님들께서는 성지순례를 반드시 다녀오시도록 해야 할 것이며 그것이 당장 어렵다면 이 순례기를 통하여 그 갈증 해결이 어느 정도 가능하도록 치밀하게 기록되었다.
◈ 함께 하는 분들의 호흡을 느끼는 일체감과 현장감 있되, 다른 순례기와는 차별화된 방식으로 기록하여 저자와 독자가 동행하게 만드는 독특한 전개 방식
저자의 성지순례기는 아주 독특한 면이 있다. 우선 서술이 진솔하다. 여행을 출발하여 돌아 올 때 까지 일정의 시간에 맞추어 차례차례 정리한 것이어서 마치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그의 기록의 일부를 보자.
05:30, 일어나다.
06:30, Morning Call,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07:20, 식사를 하다.
08:30, 승차. 출발하다.
09:17, 바울의 생가가 있는 ‘다소’에 도착하다. 우리가 잠을 잔 아다나에서 서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바울의 고향 다소가 있다.
이러한 섬세한 기록은 같은 코스를 여행하는 분들에게도 큰 도움을 줄 뿐 만아니라 성지순례를 계획하고 있는 분들에게도 정확한 자료로 제공될 것이다.
저자는 또한 전체적인 글의 흐름을 잡음에 있어 읽는 분들로 하여금 궁금한 것을 모두 모아 자료로 제공하고 있다. 그 지역에 가면 그 지역과 관련된 설명 자료 가 있고 그 지역이 바울에게는 어떤 지역이고 종교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으며 관련 된 성경구절은 무엇이며 거기고 느끼고 감동받은 것을 생각조각으로 남겨 정리를 하고 있다.
14:30, 아레오바고에 도착하다. 이제 아크로폴리스 관람이 시작된다.
아레오바고는 인류 최초의 법정이다. 여기서부터는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와 그 위에서 주변을 조망하였다. 우리는 아레오바고에서 바울의 설교를 듣고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서 그곳을 관람한 후 멀리 있는 아고라 제우스 신전 터도 보았다.
아레오바고. 바울이 선교한 곳이다. 목소리가 울리는 듯하다. 사도 바울이 이곳에 와서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학파* 철학자들을 앞에 놓고 기독교를 전도한 곳이다. 가운데 멀리 보이는 까만 석판에는 바울이 설교한 성경 말씀이 판각되어 있다.
* 스토아학파(Stoicism) : 모든 탐구의 목표는 평온한 마음과 확실한 도덕을 낳는 행동 양식을 인간에게 제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고대 그리스 철학.
* 에피쿠로스학파(Epicureanism) : 일반적으로 쾌락·행복이 최고선이라고 주장하는 쾌락주의와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한 고대 그리스 철학
----- 아레오바고(Areopagus) -----
아레스(Ares)의 언덕’이란 뜻. 아덴의 유명한 아크로폴리스 북서쪽에 있는 높이 115m의 석회암 언덕(행 17:19). 헬라의 개혁자 솔론이 세운 대법원이 있었다. ‘아레스의 언덕’이란 헬라의 전쟁신 아레스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 하리로티오스를 살해하여 처음으로 이곳에서 재판을 받았다는 고사에 근거하여 명명되었다. 아레오바고 회의는 아덴에서 가장 역사 깊고 또 최고 권위를 인정받은 회의로서 초기에는 소송을 다루는 ‘법원’ 역할을 했었다. 하지만 로마 시대에 이르러 아덴의 풍습과 도덕과 교육을 관장하고 또 새로운 종교나 철학이 유입되는 것을 통제하는 일종의 감독기관 역할까지 하게 된다. 바울은 이곳에서 기독교의 진리를 전하였다. 이때 대부분의 청중들은 그 말을 거부했으나 소수의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 중에 아레오바고의 관리인 디오누시오가 있었다.
바울은 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에 관해 전했는데, 그리스 철학이 체질화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부했고 소수의 사람들, 즉 ‘아레오바고의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행 17:22~34)’을 비롯하여 믿음의 동역자를 얻었다.
----- 성경말씀 : 사도행전 17:16~19 ; 22~24 ; 34 -----
바울이 아덴에서 전도하다
16.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8. 어떤 에피쿠로스(Epicurean)와 스토아(Stoic)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 할 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썽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19.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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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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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 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아크로폴리스 북서쪽 300m 떨어진 곳에 아레오바고 언덕이 있고, 다시 북쪽으로 200m 가면 아고라가 있다. 아크로폴리스 오른쪽에 하드리아누스 문과 제우스 신전, 더 오른쪽에 올림픽 경기장도 있다.
아레오바고 뒤에 아크로폴리스가 있고, 그곳에 파르테논 신전, 니케 신전, 프로필레아, 에레크테이온 신전이 보인다. 바울은 거대한 신전들을 보고도 조금도 굴함이 없이 담대하게 예수님을 전하였다. 대단하다. 강력한 설교 말씀이 울려 퍼지는 듯하다. 바울이 쟁론을 벌이던 아레오바고 언덕 오른쪽 끝에 말씀이 적힌 검은 동판이 보인다.
우리 성지 순례단이 이곳에 온 것은 인간이 지은 거대한 신전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2,000년전 이 우상 신전 앞에서 큰 소리로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殿에 계시지 아니하시고’(행17:24) 라고 외친 사도 바울을 만나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 작가로서의 섬세한 문장력, 교육자적 도덕성과 통찰력, 순종하는 뜨거운 동반자적 영성이 동행하며 순례하는 글
저자는 시인이자 아동문학가이다. 그 문장이 어찌 섬세하지 않으랴. 문장 곳곳에 빛나는 아름다운 문체와 상황을 통찰하는 힘을 느낄 수 있다. 보통 사람은 그냥 지나 갈 수 있는 아주 사소한 장면에서 거대한 수레바퀴를 발견하기도 하고 사상과 이념의 지나가는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학적 소양은 방문 지역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소양 그리고 오랜 교직생활에서 얻어진 자연과 인문에 대한 섬세한 관찰력이 문학적 기초 토양 아래 빛나는 문장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님을 향하는 굳은 믿음이 문학의 향기로 되살아나는 그의 글에서 고대와 현대를 이어가는 오작교를 새로 세워 가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게 된다. 그래서 그냥 문학이 아니고, 그냥 보통 순례기가 아닌 문학과 영성과 교육이 동행하는 순례기로 꽃피워 진 것이다.
◈ 저자는 이 순례기를 읽을 때 다음 과 같은 내용을 참고하라고 권하고 있다.
□ 잠깐! 이 성지 순례기를 읽으실 때 참고하세요.
첫 째, 성지순례 일정에 따라 썼습니다.
둘 째, 순례기의 글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1. 보고 듣고 느낀 것은 맑은 고딕 11포인트로 정리하였습니다.
2. 생각조각은 순례 중 특별한 생각이나 느낌을 따로 정리한 것입니다. 때때로 시적詩的 표현이 있습니다만 시라고 하기보다는 시적 느낌으로 쓴 것이라고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3. 성경 말씀은 지역, 사건 및 인물과 관련된 내용으로 최소한만 제시하였습니다.
4. 이해를 돕기 위하여 순례지역과 관련된 참고사항을 많이 게재하느냐고 노력하였습니다.
5. 때대로 직접 보지는 못하였지만 스쳐 갔다거나 멀리서 본 것이라도 중요한 것은 검색하여 제시하였습니다.
셋 째, 지도와 사진을 적절하게 배열하여 사실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제공하여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넷 째, 성경말씀은 개역개정 큰글 성경(아가페출판사, 2005년판)을 참고로 하였습니다.
다섯째, 인명이나 지명, 역사적 사건 등은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도서출판 두란노에서 나온 비전 성경사전 등을 활용하였습니다. 특히 지명은 고대, 중세, 현대 그리고 성경 지명 등 다양하여 그 중 현재 많이 쓰는 것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여섯째, 서문에서 이야기하였습니다만, 글을 정리하다가 부족하여 자료가 더 필요할 때에는 인터넷 검색으로 보충하였습니다. 그러나 미처 원저자를 기록하지 못하였습니다. 좋은 성지순례기를 전달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오니 널리 이해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일곱째, 대부분은 성지를 중심으로 순례하였으나 아테네와 이스탄불에서는 성지 외에도 세계문화 유산을 관광하였습니다. 이는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하자는 의미로 널리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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